자기 신분을 철저히 숨기며 스위스의 한 상류층 국제학교에서 4년을 보낸, 뚱뚱하고 비밀에 싸인, 농구와 정크푸드를 좋아하던 이 십대소년이
2011년 지배권을 손에 넣으면 북한을 개혁하리라고 믿었던 바보들이 참 한심하다.
서른여덟의 김정은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 독재자로 밝혀졌고 - 그는 여전히 비밀스럽다. 보도에 따르면 그가 금요일에 살아서 나타났다고 한다. 죽거나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추측이 수주간 지속된 후였다. 하지만 가명으로 스위스 베른의 한 교외에서 공부하던 어린애였던
때와 다름없이, 그는 여전히 세상으로 하여금 그에 대해 추측하게 만들고 있다.
김이 스위스 - 형이 이미 공부하러 간 - 로 보내진
것은 300만의 목숨을 앗아간 충격적인 북한 대기근이 한창이던 1996년
12살 무렵이었다. 그는 그의 어머니 노릇을 하다가 나중에
미국으로 망명한 이모의 보살핌에 맡겨졌는데, 그녀는 맨하튼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다.
1998년 베른에 있는 리베펠트-스타인헐즐리(Liebefeld-Steinhölzli)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였던 조아오 미카엘로는 그를 변덕스럽다고 할만하며
농구와 특히 마이클 조던에 집착하던 소극적인 아이로 묘사했다. 또한 장클로드 반담의 영화를 좋아했다.
"그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고 미카엘로는 말했다. 그는 '박철'이라는 이름으로 지냈고 선생님들은 그가 북한 외교관들의 아들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김은 농구에 미쳐서 어떤 때는 침대 옆에서 농구를 하다 잠들었다고 그의 이모가 말한 적도 있다. 그는 NBA 유니폼을 입고, 값비싼 나이키 신발을 대량으로 수집했으며, 최고급 체육복을 입었다. 청바지는 절대 입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혐오스런
자본주의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김의 리베펠트 학교 선생님이던 미셸 리센은 김을 유머감각이 있던 성품 좋은 14살짜리 아이로
기억했다. 리센씨는 김정은이 이모와 다른 가족들과 함께 북한 대사관에서 멀지 않은 평범한 집에서 살며
종종 걸어서 학교에 왔다고 말했다.
"뒤돌아보면, 다정하고 온화한 아시아 소년을 볼 수 있었다"고
리센은 2018년 NBC뉴스에서 말했다. "옆집사는10대."
리센은 김이 좋은 학생이었지만 "비상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실수하지 않는 학생이었다고 리센은 말했다. 김의 해외유학은 그가 관심을 가졌든 아니든
서구의 가치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여기 스위스에서는 민주주의가 우리 존재의 일부입니다,"라고 리센은 말했다. "따라서 분명히 그는 민주주의와 접촉했던 셈이다."
미카엘로는 김이 자신이 북한 지도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고백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과거
같은 반 친구는 자신의 오랜 친구가 2011년 이상한, 개인숭배주의
독재국가의 세 번째 계승자이자, 위대한 지도자로 등장할 때까지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김정은이 해외에서 유학하면서 프랑스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고, 파리의 유로 디즈니에 가며,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수영을 하며 가족휴가를 보냈지만, 이런 국제적인
경험은 아버지 사망 후 넘겨받은 고국의 동포들을 위한 정치적 깨달음이나 공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틀림없이
그 모든 것은, 평범한 북한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동안 주구장창 비어있는 놀이공원과
스키 리조트를 건설할 생각이 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김정은보다 한 살 아래로, 2014년 한국으로 그 후 미국으로 망명한 북한 태생의 제이슨 리는, 겉보기에는 4년간의 스위스 체류로 김의 많은 것들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의 상류층 가정 출신들로
구성된 소수의 이너서클에서 이런 모습은 전형적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다국어를 구사하고 있고 엘리트 가정의 많은 아이들은 가능한 한 여행을 많이 하고 해외에서 생활한다"고, 지금은 워싱턴 DC에
살고 있는 이씨는 뉴욕포스트에 전했다. "그 나라에서는 아무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지만 북한
밖으로 나오면 접속할 수 있다. 그들은 교육이 가짜라는 것과, 김씨
가문의 신화도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에 거스르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들의 가족 전체가 처벌받을 테니까 말이다. 그들은 이를 삼대통치라고
부른다."
김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굶주리는 사람이 많고 정치 엘리트들의 가정조차 하루 한 시간
이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나라를 개혁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나라를 경영하는 데 있어 달인이지만 그 역시 그 나라와 신화 속에 갇혀 있다"고
전 CIA 분석가이자 신간 「김정은 되기」의 저자 정H.박씨는 본지에 말했다.
"그는 핵무기, 억압적인 관료주의, 강제노동수용소와
공포를 물려받았으며, 거기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살아남으려면
그는 잔학행위를 계속해야 한다. 그에겐 달리 방법이 없다.
김정은에게 있어 자신의 300파운드짜리 권력(몸무게를
빗대어:역자주)을 휘두르며 가까운 친구와 친척들을 죽이고
고문하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탈북자인 그의 이모는, 뉴저지 북부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성미가 급하고 인내심이
부족했다'고 그가 어렸을 때를 회고했다."
"그를 소시오 패스라고 하지는 않겠다," 박씨는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주 잘 참는다. 그가
삼촌과 형을 죽인 방법은 극단적으로 잔인했다. 그것은 공개적이고, 소름
끼치며, 굴욕적이었다. 그리고 실수하지 않는다. 그는 정권 밖의 사람들을 위해서 그러나 주로 정권 내부의 사람들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 그들에게 누가 보스인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 위원장이 그렇게 뚱뚱하게 보이는 전략적 이유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주민들은 자주 추위와 허기, 굶주림을 겪기 때문에 비만인 사람은 건강과 부와 권력을 상징한다.
90년대 기근을 겪었던 아이들은 이제 노동당 소속의 군인들이 되었다. 그들의 성장은 기아로 인해
너무나 저해되어 어떤 병사들은 간신히 5피트를 넘는다. 군인의
최소 신장 요건은 4'8"(142cm) 또는
4'9"라는 보고가 있었다. 김은 5'7"(171cm)이고 1948년 나라를 세우고 1994년까지 통치한 그의 할아버지는 5'10"(180cm)로 북한사람치고는 키가 매우 컸다.
차씨는 "신체적으로 김이 자기 할아버지를 닮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처럼 늘 뚱뚱하고 담배를
피우고 겉으로는 쾌활했다. 지도자의 외모란 기운차고 건강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보이려 애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