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매체 이스라엘투데이는 지난 12일 보도를 통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5 일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흥미로운 진술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마크롱은 이 날, 민간인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비난하고, 이스라엘의 안보에 프랑스가 헌신하겠다는 입에 발린 인사말을 하고 나서, 일부 세력들에 의한 모든 선동적인 표현들을 비난할 때, 폭력과 평화에 관한 그의 문제 투성이의 견해들이 노출되었다.
마크롱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마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대사관의 이전이 가자 지구에서 사람들이 죽게 만들었다. 만약 대사관의 이전이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면, 이것은 축하할 일이 아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만약 본 기사의 필자가 대통령의 이름에 반유대주의라는 표현을 붙인 것에 대해 신경을 쓴다면, 본 기자를 고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마크롱은 반유대적이 아니기 때문에, 본 기자는 그 재판에서 질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마크롱이 최종적으로 '황당함'이라는 논리적 결론에 봉착해서야만 자기 본래의 색깔을 드러내게 될, 논리적이고 도덕적인 논법을 사용하리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도덕적 기준에 따르면, 원주민을 쫓아내고 토지를 점령한 백인 식민주의자로 간주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은 결코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책에 쓰여진 가장 오래된 반유대주의 주장이다. 성서에서도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이 주장은, 그 후로 이스라엘 땅에 유대인들의 존재를 반대하는 표준적인 논리가 되어 버렸다.
이제 유대인들은, 토라, 사람, 땅이라는 세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토대 위에 있기 때문에, 한쪽 기둥이라도 제거하면, 이스라엘이라는 전체는 끝장나게 된다. 그러므로 반유대주의는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이나 또는 유태인에 대한 원시적인 증오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깊다.근본적으로 , 반유대주의는 이러한 세 개의 기둥 중 어느 하나라도 제거하려는 시도이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사안인 토지에 관해서, 성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유태인 해석가 라시는 창세기에 대한 논평에서 왜 창세기가 쓰여졌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그 이유는 시편 111 편 6 절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다른 나라의 땅을 그들(유대인)에게 줌으로써, 자신의 백성에게 자기가 한 일의 능력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창세기는 세상 나라들이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일곱 나라의 땅을 점령했기 때문에 너희들은 강도다”라고 말할 때, 그들에게 그 땅이 주님의 땅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쓰여졌다.
“하나님께서 땅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자들에게 주셨다." 라시의 대답은 냉정할 정도로 솔직하다. 신성한 법령이 없다면, 그는 이스라엘이 참으로 졸렬한 모조품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계획에서, 7개국의 땅에 정당하게 사는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바로 그 생각을 부인하는 명백한 반유대주의는 이스라엘에 반대해 왔고, 여전히 반대하는데 사용되는 도덕적으로 단단한 주장이 되었다.
1919 년 파리 평화 조약을 생각해 보자. 이 조약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태인 집을 위한 밸푸어 선언을 승인하였다.이 조약을 이끈 것은 팔레스타인에 유태인 국가를 지지하는 것이 아랍의 저항으로 인해 폭력으로 이어질 것이고 ,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태인 국가는 오직 힘에 의해서만 설립되거나 유지될 수 있다고 결론내린 킹 크레인 위원회였다. 오늘날처럼, 평화가 강대국의 외교정책의 뒤에 있는 주요한 동인이라면, 이스라엘은 아예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마크롱의 논리와 도덕은 위와 같은 논리를 따라 움직인다.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으로의 이전이 가자 지구에서의 폭력 사태를 낳는다면 도덕적, 정치적으로 그것을 하지 않는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평화는 비록 이스라엘의 심장 동맥이 막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지라도, 이런 반유대주의 주장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세계에 좋을 것이다.
균형을 유지하는 척하려고, 마크롱은 이스라엘을 파괴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하마스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거부하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도덕적 평등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반유대주의자들은 평화는 이스라엘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마크롱이 깨닫든 못 깨닫든 간에, 마크롱은 유명한 방송 드라마 마쉬(MASH) 주제곡처럼 "자살은 고통스럽지 않고, 자살은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라는 자장가를 부드럽게 속삭이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겐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이런 것은 이스라엘을 안락사시키는 "용감한 "유럽의 노력의 일환”일 뿐이다.
(번역 : 글로벌디펜스뉴스 외신번역기자 민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