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즈의 조나단 말러와 더크 존슨 기자는 대선을 백일쯤 남겨둔 지난 2016년 7월 20일, "마이크 펜스의 여정: 가톨릭 민주당원에서 복음주의 공화당원으로 (Mike Pence’s Journey: Catholic Democrat to Evangelical Republican)" 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당시로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던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에 대한 철저한(?) 사전 검증에 나섰다.
어떻게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알만한 뿌리깊은 천주교 집안 출신의 모범생 청년 민주당원이 별다른 계기도 없이(겨우 십자가 금 목걸이 때문에?!) 하루아침에 개신교로 개종을 하고, 게다가 추진중인 모든 정치 이슈마다 철저한 복음주의를 적용하는 강성 공화당 주지사가 되었는지 그의 독특한 신앙과 정치 이력을 추적하려던 모양이다.
그러나 역시 뉴욕 타임즈의 명성에 걸맞게,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땅찮은 대통령 후보에 마땅찮은 부통령 후보"라는 내러티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최측근인 형과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했지만, 정작 본인 입으로 설명을 듣지 못한 부분은 신빙성에 있어서도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트럼프가 승리해버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후보 흠집내기]라는 본래의 취재의도는 실패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 대한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더 이상 뉴스라 부르기도 어려워진 이 기사를 늦게나마 소개해 본다. 다음은 장황한 기사 전문이다.
기사출처: https://www.nytimes.com/2016/07/21/us/politics/mike-pence-religion.html
인디애나주 마이크 펜스
주지사는 대학 때, 교내 사교클럽 "선배'의 목에 걸린 금박 십자가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수십 년 뒤 의회에 입성해서까지도
떠올릴 만큼 그가 받은 십자가 목걸이의 인상은 강렬했다.
그 클럽 선배는 "기억해라, 마이크, (이
십자가를) 네 목에 걸기 전 먼저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펜스 주지사는 회고했다.
이 십자가 목걸이를 받고
얼마 안되어, 켄터키에서 열린 크리스천 음악 축제에 참석한 펜스는, 파이
감마 델타(Phi Gamma Delta: 출세지향적 북미 대학 사교클럽. 역자주) 가입을 위해 했던 맹세와는 확연히 다른 류의 서약을 했다. 수년 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 내 삶을 드렸다. 그러자 모든 게 변했다."고 회상했다
이는 펜스를 재정의하도록
만든 결단이었다. 복음주의 개신교도로서 겉으로는(?) 이
나라에서 으뜸으로 종교적이고, 사회적으로도 보수적인 국회의원이 되는 길로 이끌게 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는 또한 펜스
家의 핵심이던 로마 가톨릭 교회와 민주당이라는
두 조직과의 결별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수요일 밤 공화당 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한 펜스 주지사(57)는 6남매 중 유일하게
이제 더 이상 가톨릭 성당의 신자가 아니다. 여전히 가족들과 가깝게 지내긴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가 복음주의 개신교로 개종하자 한동안 실망스러워 했었다고, 펜스
주지사가 세례를 받은 곳이기도 한 인디애나 주 콜럼버스에 위치한 성당의 클레멘트 T. 데이비스 신부는 전했다.
펜스 家의 아일랜드 가톨릭은 그 뿌리가 깊다. 펜스 주지사와 각별했던 그의 외할아버지는 1923년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시카고에 정착해 후에 버스 운전기사가 됐다.
그의 가족에게 있어 미국
최초의 아일랜드계 가톨릭 대통령인 존 F 케네디는 우상이었다. 십대였던
마이크 펜스는 바톨로뮤 카운티의 민주당 청소년 코디네이터였다.
펜스 4형제는 모두 자신들이 다니던 세인트 콜럼바 성당에서 복사로 활동했고, 가톨릭
교구 사립학교에 다녔다. 그들은 일주일에 6일, 토요 미사에 참석할 때면 7일을 성당에서 지냈다. 그들 모두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도, 성당에서는 방학 때나 여름이
끝났더라도 복사가 필요하면 펜스 집안으로 연락하곤 했다.
"우리 생활은 성당을 중심으로 돌아갔다"고 펜스 주지사의 두 형들 중 하나인 그레고리 펜스씨는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여전히 일주일에 수 차례씩 어머니와 함께 아침 미사에 다닌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오하이오 강변에
자리한 인디애나의 소수정예 리버럴 아츠 칼리지인 하노버 대학에서, 펜스는 자신의 영적인 삶에서 무엇인가가
빠져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있어 천주교는 종교적 형식과 의례만 강조했을 뿐, 이제 자신이 목말라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마이크 펜스가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운동에 가져온 것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젊은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고 몇 년 뒤 기독교 방송국(CB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그건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펜스로서는
자신이 나고 자란 교회를 뒤로하고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졸업 후, 그는
천주교 청소년 선교사로 봉사했고, 심지어 신부가 되는 것까지 고려했었다. 수년간 자신을 "복음주의 가톨릭 신자"라고 묘사했다. 친구들은 그가 자신의 종교적 과거와 미래를
어떻게 일치시킬 것인가를 놓고 씨름했었다고 증언한다.
"그는, 말하자면, 가톨릭 신자로 성장해서 여전히 성당에 관한 많은 것들을 사랑하지만, 그리스도와
정말 깊은 일대일의 관계를 갖는다는 개념 (개신교의 핵심사상)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캠페인의 일원이 되었다"고,
80년대 중반 자신의 남편 마크와 함께, 인디애나폴리스의 한 법률 회사에서 펜스의 직장동료였다가
가까워지게 된 패트리샤 베일리는 전했다.
펜스의 부인 카렌도 그
캠페인에 동참했다. 그들은 펜스가 인디애나대 로스쿨에 다닐 때 만났다.
두 사람이 교제를 시작한 뒤, 그녀는 '예스'라는 글자가 새겨진 금 십자가를 사서, 그가 프러포즈할 때까지 지갑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는 펜스의 신앙 여정에 있어 엄청나게 큰 부분이었다"고 페트리샤의 남편 마크 베일리는 덧붙였는데, 그는 예의
그 법률회사 한쪽 사무실에서 펜스와 함께 종종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었다. "그는 자기아내를
집안의 기도용사라 칭하곤 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펜스 주지사 내외는 인디애나폴리스의 한 복음주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1997년 이래 지금은 세인트 바톨로뮤라 불리는 성당의 사제이자 펜스의 어머니 낸시
여사와 한 동네에서 자란 데이비스 신부에 따르면, 몇 년이 지났어도
(아들의) 천주교로부터의 단절은 여전히 그의 어머니를 괴롭혔다고 한다.
"당시 낸시가 아들 문제에 관해 머리를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토요일 미사에 앞서 사제관에서 데이비스 신부는 말했다.
"그 어머니는 낙담했다. 아들이 성당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었다."
펜스 일가를 알고 있던
콜럼버스의 다른 사람들도 놀랐다. "펜스는 정말이지 거대한 가톨릭 가문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펜스 부통령의 고등학교 친구인 재니 고든은 말했다.
펜스의 어머니는 언급을
피했다. 펜스 주지사도 개종과 관련한 인터뷰는 거절했지만, 대신
자기 형이 가족의 신앙에 대해 밝히는 것은 허락했다.
신앙이 바뀌자 그의 정치도
달라졌다. 그는 1980년 지미 카터에게 투표했지만 직후
로널드 레이건과 낙태에 대한 공화당의 강한 반발에 끌렸다.
이제 그가 어떤 정치의제를
추진하든 그 추동력은 그의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이다. 그가 미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에 대한 연방 보조금 지불을 거부하든 종교적인 보수주의자들로 하여금 동성커플에
대한 서비스 거부를 합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든 간에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 소중한 자녀들과 어머니 및 가정들을 계속 축복해 주시기
기도하며 이 법안에 서명하는 바이다." 그는 지난 3월, 다운증후군 등의 장애를 이유로 실시하는 여성의 낙태까지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낙태금지법안에 자신의 펜을 갖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어떤 연방판사가 이 법안 통과를 막아버리긴 했다.)
전당대회에서 대본만 쳐다보는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의 정치 칼럼니스트
브라이언 호이는 "펜스는 단순히 소맷부리에만 신앙을 걸고 다니지 (마치 웨이터가 냅킨을 손목에 걸치듯 사제들이 미사를 위해 수건을 걸친 모습:
무늬만 독실한 신앙인인 척하는 것을 빗댐. 역자주) 않고
예수라는 체육복을 위아래 한 벌, 세트로 입는다"고 말한 바 있다.
국회의사당에서 의정활동
와중에도, 펜스는 아내 없이는 술이 제공되는 행사에 참석하려 하지 않았다. 동료 의원들은 가끔 그가 나타나면 말조심해야 한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펜스는 정치경력
초기 유달리 진흙탕 싸움이었던 의회 경선에서 패배한 후, 네거티브 선거운동 포기를 맹세하며 공격적 광고(attack ads: 경쟁후보 비판에 집중하는 선거용 광고. 역자주) 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선거가
끝난 뒤 그는 성경구절을 인용해,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는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구원하러
오셨다"고 썼다.
2012년 펜스 주지사가 치열한 주지사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 그의 미디어 전략가 렉스 엘사스는 그가 인용한 그 성경말씀이 진실인 한, 상대
민주당 후보가 퍼붓는 직접적이고 강압적인 공격적 대응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설득하기 위해 다른 성경말씀을 찾아 들이댔던 일을 떠올렸다. 물론 펜스는 거절했다.
그러나 최근 며칠 동안
그는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후려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도널드 J. 트럼프가 붙여준 꼬리표인 "사기꾼 힐러리"를 흉내내 "부패한 힐러리'라고 불렀다.
2008년 펜스가 졸업연설을 하기 위해 모교에 돌아왔을 때, 그의 연설은 대학생활에서 그가 겪은 가장 심오한 경험을 향해 이어졌다.
"여기 있던 불과 몇 년 사이에, 나의
모든 친구들과 가족들을 다 합친 것보다 내 삶을 더 많이 바꾼 단 한 사람을 만났다" 며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했다. 그리고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기 전, "30년
전 봄, 나는 진리를 받아들였다"고 말을 이어갔다.
이제, 펜스 부부는 인디애나폴리스에 있는 세 개의 초대형 스크린과 색색의 스포트라이트, 크리스천 음악밴드들이 있는 복음주의 대형교회인 칼리지 파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트럼프 후보가 펜스를
맨하튼 미드타운에서 러닝메이트로 공식 소개한 다음날인 일요일, 이들은 그곳 극장식 강당 발코니에 앉아있다가
음악의 리듬에 맞춰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여러 교인들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이 깊어지게 된 경험을 이야기했다.
펜스나 선거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대형 스크린에서 번쩍이는 "교회에 (성령의) 불을 질러라, 이
나라를 되찾을 테니"라는 가사의 노래가 신도들의 신앙심을 부추겼다.
그것은 펜스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근엄한 세인트 콜럼바 가톨릭 성당의 나무벤치에 무릎 꿇은 자들과는 전혀 다른 외침이었다.
그레고리 펜스씨는 동생이
복음주의 개신교로 개종한 사실을 가톨릭 신앙에 대한 거부가 아닌, 오히려 그가 다른 영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들 둘은 여전히 함께
기도하고 있는데, 단지 주로 하던 교회에서가 아닐 뿐이다. 실제로
그레고리는, 트럼프가 자신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듣고 동생이 전화를 걸자 마자 눈물을 흘리며
성경구절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잘 하였도다 나의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태복음 25:23)" 그레고리 펜스씨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는 동생이 부통령으로
지명되기 전부터 트럼프를 지지해 왔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과거 아내 셋과 카지노 제국을
포함해서 욕설과 부적절한 사진을 아무렇게나 올려대는 사람과의 계약에 대해 어느 정도 의구심이 들지는 않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비판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