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미 공군이 운영하는 F-16 전투기 파이팅 팰콘의 창정비 사업을 수주했다”고 지난 11월 1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항공 MRO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KAI는 지난 10월 31일 미 공군 태평양 공군 소속 F-16 90 여대의 창정비 및 기골보강 계약을 4,880만 달러(약 540억) 원에 계약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MRO란 "기업에서 제품 생관과 관련된 원자재 및 대형설비를 제외한 기업에 필요한 모든 소모성 자재" 를 의미한다. 즉, Maintenance(유지), Repair(보수), Operation(운영)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용어이다.
MRO는 기업운영에 있어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통상 10~20% 내외에 불과하지만 비주기적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수요 예측에 따른 자재소요계획(MRP; Material Requirement Planning) 시스템 적용이 힘들고, 긴급하게 구매하는 비율이 40~50%로 높은 편이어서 비효율적으로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 또 수많은 종류의 제품을 포괄하므로 구매 단계가 복잡하고 그 과정이 정형화돼 있지 않다는 점도 MRO 관리의 문제로 꼽힌다.
이에 따라 일반 기업들은 MRO 관리에 대한 인력과 비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대행업체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전문업체를 MRO기업이라 한다.
국방분야에서도 이런 MRO 사업이 있는데 항공기 유지보수 사업이나 해군 함정 창정비 사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창정비란 정비 개념 중 최상위의 정비 단계로 대규모 정비 시설 및 장비를 운영하며, 하위 정비 단계의 능력을 초과하는 정비에 대한 기술 및 정비 지원을 담당하는 완전 복구 및 재생 정비의 단계를 말한다.
공군의 경우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창정비 업무를 담당하고 해군의 경우는 잠수함 분야의 경우 대우조선해양, 함정의 경우 전체적인 큰 틀은 함정을 건조한 건조사가 진행한다. 하지만 함정 내부의 세부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개별업체들이 창정비를 진행하기도 하는데 창정비를 담당하기도 한다.
LIG넥스원의 경우 1995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형 구축함에 들어가는 함정 무장통제체계를 양산했다. 함정 무장통제체계는 표적의 탐지, 추적, 교전, 격추확인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레이더와 레이더 운용콘솔, 함포 연동 캐비닛과 미사일 연동 캐비닛 등으로 구성되며, 추적레이더와 탐색레이더를 통해 수신된 정보를 전달하고 받는 역활을 한다.
최초의 한국형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의 안테나 송신기, HPU 등은 네덜란드 탈레스사의 직도입품이 장착됐고, 이후 을지문덕함에서 최영함까지는 기술협력 생산을 통해 국내에서 장착됐다. 양산 이후에 장비는 체계진단을 통해 고칠 수 있는 것들은 건 별로 국내에서 진행하고 수리가 어려운 것들은 탈레스 본사로 보내거나 파견을 와서 정비를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실전배치 후 20년 정도 세월이 흐르면서 함정들의 보수와 개량, 수명연장을 위한 창정비 사업에 대한 소요가 제기되었고, 이에 탈레스 본사와의 본격적인 계약을 맺고 협업을 진행하게 된다.
한국형 구축함의 무장통제체게 창정비 사업은 LIG넥스원의 최초의 해군 창정비 사업으로 추적레이더, 탐색레이더의 공장정비, 함정설치, 성능시험을 거쳐 해군에 납품하는 사업이다. LIG넥스원의 경우 국군의 나이크-호크 미사일 창정비 사업에 대한 경험은 있었지만 해군의 창정비 사업의 경험은 전무했기에 해외기업과의 국제협업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상태였다.
창정비와 분해조립, 시험과 설치에 이르는 창정비 과정을 위해 16명이 3단계에 걸쳐 교육을 받았고 탈레스사에서도 4-5명의 담당 엔지니어를 단계 별로 국내로 파견해 기술이전과 습득을 도왔다. 창정비 초기에는 탈레스사 인력들이 주도해서 진행하는 과정을 통해 기술을 습득했고, 그 이후에는 국내 기술팀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면서 문제가 발생할 때 탈레스사에 조언을 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탈레스사의 제품이 캐나다, 인도네시아, 대만, 터키, UAE, 등 세계 각지로 다양하게 수출됐지만 기술이전을 통해 창정비를 진행하는 케이스는 한국이 처음이었다. 양산을 담당했던 기술자들이 창정비를 함께 한 것이 아니라, 단계마다 다른 담당 엔지니어들이 로테이션으로 파견을 와서 함께 작업을 했기에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발생했다.
언어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도면 자체가 국내에서 사용하는 도면의 형태가 아니라 현장에 그대로 있는 형태의 도면이라 어려움도 많았다. 전자기 계통의 이해는 빨랐으나 기계적 부분에 대한 조립은 경험 자체가 없었기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차츰 경험이 많이 쌓이면서 기계적 조립에 대한 부분도 많이 좋아졌다.
현재는 탈레스사 엔지니어들이 와도 예전처럼 모든 부분을 관여하지 않고 점검만 하는 정도로 국내 인력들 주도로 창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초도사업때보다 안정화가 많이 이루어져 탈레스사에서 파견나온 엔지니어들도 이제는 믿고 기다리는 수준까지 됐다.
함정은 연간 두 척씩 창정비가 이루어진다. 본격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정비 3개월 전에 사전 기술검사를 통해 장비시스템을 점검해 소요 자재를 사전에 식별하고 파악한다. 1주일 전에 다시 기술검사를 실시하고 함정에서 안테나와 송신기를 탈거해 공장에 입고하면 본격적인 정비가 시작된다.
입고 기술검사와 도장 · 도색을 진행하면서 필수 교환품목과 보유품목을 확인하고 조립 후에는 수락시험을 진행한다. 함상 설치 후에는 제대로 동작하는 지 5단계 시험 항목을 거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함정을 타고 출항 해서 OO일간 함상에서 실제로 운용하면서 최종 시험을 거쳐야 창정비가 완료된다.
1977년부터 2010년까지 LIG넥스원의 창정비는 공군사업이 중심이었으나 나이키-호크가 천궁으로 대체되면서 비중이 축소된 바 있다. 이에 관심분야를 해군 정비사업의 돌려 해군쪽 창정비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시스템 정비를 통해 축적된 엔지니어들의 역량에 대한 소요군의 신뢰도 두터워진다면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의 창정비 사업의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의 LIG넥스원의 예에서 보듯이 국내 MRO 및 창정비 사업의 경우 초기에는 외부와의 많은 기술협력이 필요하고 시행착오가 필요한 분야다. 특히 항공분야의 경우 한국항공우주산업은 보잉 및 록히드마틴과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도태되는 분야가 발생하고 새로운 분야가 탄생함에 따라 창정비 기술의 소요도 점점 발전하게 된다. 이렇듯 어렵게 습득한 방위산업 기술 혹은 창정비 사업의 기술들이 방산비리, 방산적폐라는 이름으로 낙인찍혀 국민들의 관심에서 외면받는 사업이 아니라, 국가 수출에 보탬이 되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국민산업이 되어 지역사회 발전 및 국가 발전에 한 축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