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러시아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러시아인들80%가 자신을 정교회 신자라고 답하고 있다. 8%가 다른 종교를 고백하고 있고, 5%는 무신론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러시아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을 계승했고, 그 소련의 핵심국가였기때문에 우리는 흔히 러시아를 종교를 부정하는 사회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 여론조사는 우리 인식이 사실과동떨어진 오해라는 것을 보여준다. 카톨릭과 신교를 포함하여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수용하고 있거나 핵심종교로 인정하는 서방 국가들 이상으로 러시아는기독교 전통이 강한 나라다. 다만, 그들이 대부분의 서방국가들과 달리, 그리스에서 발생해서 비잔틴 제국을 통해988년 이후 러시아에 전파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정교회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낯설고 먼 이방국가로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쨌든 5만5천 개가 넘던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공산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해인 1917년에만5만 4천개 이상이 파괴되었다. 남아있던국보급 성당들도 상당수가 스탈린 시대에 파괴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1931년에 폭파된 모스크바 최대 규모의 그리스도 구세주 성당이다. 이 성당은 러시아 정교회의 상징 중 하나로 181
영국 처칠 수상의 지시로 옥스퍼드 대학 경제학 교수인 베버리지가 만든 보고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의 건강과 복지에 대해 책임지는 국가’라는 제목으로‘가난한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영국 사회복지제도를 상징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리고 북구 스웨덴의 ‘태내에서 천국까지’라는 복지 개념의 원조는 사실상 소비에트 연방의 출생과 교육, 의료와주거에 대한 무상제도에 있다.그들이 자신들이 사회를 지상낙원이라고 미화하기도 했던 것은 여기 근거한다. 그러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국가의 무상복지는 그들 사회의 우스개소리처럼 ‘살라고주는 것이 아니라 죽지 말라고 주는 것’ 이상의 수준을 넘지는 못했다. 무료 복지 서비스의 질은 필요한만큼 높지 못했다. 게다가 늘 물자부족이었다.그나마도 소련이 붕괴되면서 더 부실하거나 유명무실해졌다. 자본주의 도입에 따라 출산부터 의료 및 교육과 주택 그리고 장례식까지도 유료 시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식층과 전문인력들이 유료 시장에 뛰어들수록 무상복지제도는 점점 더 붕괴됐다. 유료서비스의 질은 향상되어갔지만, 상대적으로 빈곤층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무너졌다. 그러나 차라리 돈을 내고
마피아의 제국으로 알려진 1990년대 러시아. 러시아 경제 및 정치와 사회를 구조적으로 왜곡시켜놓은 장본인으로 회자되는 러시아 마피아. 이들의 존재는 언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까. 이들 러시아 마피아의 존재가 처음 세간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고르바초프의 개방 및 정보공개를 표방한글라스노스치 그리고 재건 및 개혁을 내건 페레스트로이카 이후다. 2011년 11월 미국 국무부는 러시아 마피아를 미국을 위협하는 범죄조직 1순위로꼽았다. 필자가 러시아 유학을 시작한 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러시아에서마피아라고 하면 거의 불량배,깡패, 폭력배,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로 통용되었다. 그러나어느 시점부터인가 이들의 정체가 점차 거대해지면서 구체화되고 표면화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러시아는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예비지식이나 적응훈련 또는 그를 지탱할 만한 하부구조가 전혀 없이, 옐친등을 중심으로 하는 급진개혁파들에 의해 전격도입됐다. 기존 사회주의 배급체계가 급격히 무너지면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및 물자부족현상이심각해졌다. 그리고 이것은 부패한 관료와 경찰을 매수 결탁한 일단의 무력조직의 등장으로 더욱 심화되었다.이들은 밀수와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 옐친 시대의 ‘경제적대학살’을 아십니까. 영국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리드가 사용한 이 표현은 스탈린 시대 1930-1950년대에 정치적 대숙청에 의한 사망자가 1천만명에 이른 것에 이 시대상을 빗댄 것이다. 즉, 1991-1994년 시기 ‘충격요법’에 의한 급진적 경제개혁의 여파로 인한 음주, 흡연, 사고, 의료의 질 하락 및 빈곤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등으로사망자가 350만 명에 이르렀던 신생 러시아가 겪은 참혹한 현실을 대변하는 용어다. 우리는 왜 지금 여기에서 약 30년전 붕괴한소비에트와 그로부터 독립한 러시아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논의하고 있는가.과거제국주의 시대에 '그레이트 게임'이란 개념이 있었다.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전쟁과 관련된 것이었다. 남하하려는 러시아와 막으려는 영국의 갈등과 분쟁이었다. 결과는 영국승리. 지금 그레이트 게임은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을까. 최근빅 이슈메이커로 부상하고 있는 국제관계학 전문가 김정민 박사에 의하면, 이것은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시장경제 요소를 받아들인 채 사회주의를 계속하겠다는 중국과 자유민주질서 속 시장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의 패권경쟁이 모든 세계 분
[맹세희 글로벌디펜스뉴스 편집위원(러시아 전문)] 영국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러시아는 불가사의의 미스터리에 싸인수수께끼다.’ 러시아 연구자들 사이에 흔히 회자되는 레토릭이다. 러시아를유럽의 변방으로 치부하려는 시도에 대해 경계심과 경각심을 주는 경구로 흔히 사용된다. 유럽인들은 오래전부터 러시아에대해 야만성과 함께 '알수 없는 원초적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세계에는 러시아공포증, 즉 '루소포비아'가 존재한다. 그들은 어떤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존재라는 두려움이다. 이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답변 또한 이미19세기에 외교관이자 시인이었던튜체프를 통해 나온바 있다. 외부의 평가에 비해 다소 낭만적이지만 지금도 널리 인용되는 문구다. ‘러시아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만 믿을 뿐이다.’ 러시아인들 스스로도 이성적 판단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고백이다. 20세기에 정치사회적으로 가장 강대국은 미국이라는 신세계였음을 부정하지못한다. 동시에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즉 사회주의소비에트 연방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 공룡국가 소련이 20세기에 미친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영향 또한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그들은
맹세희 글로벌디펜스뉴스 편집위원(러시아 전문) ‘그 동안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땅에서 생겨난 공산주의 모델은 실패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1991년 9월6일, 미하일 고르바초프가한 선언이 이러했다. 사회주의 소비에트 연방의 마지막 공산당 서기장이면서 소련의 최초이자 최후의 대통령이었던고르바초프. 그의 동지였다가 이후 최대 정적이 된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최초 대통령은그보다 한술 더 떴다. ‘우리 땅에서 그런 실험이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 국민들에게 큰 비극이었다’. 그해 12월 25일,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에서 고르바초프가 사임하면서 소련기가 내려지고 러시아 삼색기가 게양된다. 19세기에 태동해 20세기를 지배하고, 지상 최대의 영토를 풍미했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종언을 고하는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사회주의 국가. 지상낙원이라는 간판을 내건, 그러나 황무지 위의 폐허. 그것이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유토피아공산사회로 가는 중간지점인 사회주의 체제의 실체이자 종착역이었다. 그리고 2018년 1월.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냉전의 최전선이자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강력한 보루였던 대한민국은 현재